광주학생독립운동의 '큰 스승' 송홍 마침내 서훈

사회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큰 스승' 송홍 마침내 서훈
수 차례 거부 끝에 올해 3월 1일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 수상
  • 입력 : 2022. 02.27(일) 08:23
  • 배진희 기자
송홍 선생
[프레스존] 1920년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스승' 송홍 선생이 마침내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는다.

송홍 선생은 3월 1일 거행하는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으로 서훈을 받는다고 (사)장재성기념사업회, 운인 송홍 선생기념사업회 측이 밝혔다.

운인(雲人) 송홍(宋鴻) 선생 독립유공자 서훈은 지금까지 수차례 신청에도 심사 비대상으로 분류돼 아예 심사조차 받지 못하거나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좌절을 겪었지만 올해 들어서야 서훈이 확정됐다.

앞서 (사)장재성사업회는 2020년 5월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한 73명에 대한 서훈 요청서를 전달해 28명이 서훈받았으나 나머지 45명은 심사조차 받지 못하거나 반려됐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스승, 송훈 선생의 서훈 확정은 앞으로 독립운동사의 올바른 자리매김에도 큰 기폭제가 될 뿐 아니라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유공자들에게도 희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송홍 선생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장재성을 필두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왕재일, 박준채, 황남옥 등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을 가르친 스승이다.

왕재일, 장재성은 이 학교 3학년 시절부터 5학년까지 송홍 선생에게 수업을 받았고, 최창규와 정우채, 박준채와 황남옥 등 대다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은 광주고보 1학년 시절부터 5학년까지 선생에게 독립정신을 이어받았다.

송홍 선생은 1930년 많은 제자들이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투옥되자 장기간 수업을 거부하면서 일제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항의 끝에 사직서까지 제출하기도 했다.

교단을 떠나 독서와 집필에 전념하던 송홍 선생은 1945년 광복을 맞아 다시 교단에 서서도 제자들에게 충효 정신과 미풍양속을 새기도록 했다. 이후 1949년 6월18일 광주 자택에서 향년 78세로 한 맺힌 일생을 마감했다.

송홍 선생의 가르침과 기개를 기리기 위해 ·광주고보·서중·일고 동문 들은 1966년 11월2일 당시 서중 교정에 세운 학생독립운동기념탑 입구에 송훈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흉상을 건립했다.

이후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송홍 선생을 기리는 후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송홍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회(회장 고용호)가 2010년 구성된 데 이어 송홍 선생의 출생지인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산 3-1에 2020년 12월 추모 조형물을 조성했다.

운인 송홍 선생 추모 조형물


운인 송홍 기념사업회 추모 조형물 조성 안팎

운인(雲人) 송홍(宋鴻)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큰 스승이다. 1872년 9월 7일 아버지 송용진(宋容鎭)과 어머니 나주 임씨(林氏)의 차남으로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굴개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말의 대학자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에게 배웠다.
1906년 우리의 산천을 뺏으려는 일본인의 간계를 저지하고자 상소를 올렸으나 도리어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이후 중국의 여러 학자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는 신교육에서 구국의 길을 찾았다.
1909년 광주보통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여 이후 광주농업학교와 광주고등보통학교의 교단에 섰다. 지극한 원한을 품고도 아무 원한이 없는 듯이 하였고,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무 고통이 없는 듯이 교단을 지켰다. 외로운 교직 생활이었으나 온 힘을 다하여 학생들의 민족혼을 일깨웠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성진회 회원 왕재일, 장재성, 안종익, 최용호, 김광용, 김창주, 최규창, 임주홍, 국순엽, 정우채가 제자였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대거 구금하였다. 이에 결근으로 항의하였으나 193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교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후 광주 서동의 자택을 고분당(孤憤堂)이라 칭하고 독서와 집필에 전념하면서 고독과 비분의 세월을 보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노구를 이끌고 다시 광주서중과 광주의대의 교단에 섰다. 해방 후 혼란한 정국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중 1949년 6월 18일 광주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남평읍 우산리 비나리마을 선영에 안장되었다.
1967년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 흉상이 건립되었고, 2013년 문집 『운인유고(雲人遺稿)가 발간되었다.

2010년 2월 22일 운인송홍선생기념사업회 창립총회
2020년 3월 27일 운인송홍선생기념조형물 화순군청지방보조사업선정
2020년 6월 1일 국가보훈처에 서훈신청
2020년 10월 5일 송씨문중 조형물 건립부지 제공결의
2020년 12월 운인송홍선생기념조형물 건립
2022년 3월1일 운인송홍선생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장 서훈

광주일고 교문앞에 송홍 선생의 서훈을 환영하는 현수막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배진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