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웅인의 漢詩산책] 夜坐煎茶 - 鄭希良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2023년 01월 19일(목) 08:24

나웅인 / 삼성한의원 원장

차 생활

夜坐煎茶
야좌전다

밤에 앉아 차를 달이며 읊다.

-정희량(鄭希良, 1469 ~ 1502)

夜如何其天欲雪
야여하기천욕설

하늘은 눈 오려 하는데
밤 얼마나 깊었는가?

淸燈古屋寒無眠
청등고옥한무면

푸른 등불 낡은 집
추워 잠은 안 오고

手取床頭苔蘚腹
수취상두태선복

상머리 두터운 이끼
손으로 닦아낸다.

瀉下碧海冷冷泉
사하벽해랭랭천

푸른 바다 같은
차가운 샘물 부어

撥開文武火力均
발개문무화력균

불기운 조절하여
알맞게 불 피우니

壁月浮動生晴煙
벽월부동생청연

벽 위엔 달 떠오르고
푸른 연기 피어난다.

松風颼颼響空谷
송풍수수향공곡

솔바람 우수수
빈 골짝 울리는 듯

飛流激激鳴長川
비류격격명장천

폭포수 콸콸 소리 내며
긴 강으로 떨어지는 듯

雷驚電走怒未已
뢰경전주노미이

뇌성 번개 화가 난 듯
그치지 않더니

急輪轉越轘轅巓
급륜전월환원전

급히 가던 수레
덜커덕 넘어지듯

須臾雲捲風復止
수유운권풍부지

이내 구름 걷히고
바람도 잦아들어

波濤不起淸而漣
파도불기청이련

물결도 일지 않고
맑고 고요하네.

大瓢一傾氷雪光
대표일경빙설광

바가지에 쏟아내니
얼음 눈처럼 빛이 나고

肝膽炯徹通神仙
간담형철통신선

간담이 시원히 뚫려
신선과도 소통할 듯

徐徐鑿破渾沌竅
서서착파혼돈규

서서히 마시나니
혼돈에 구멍 뚫리고

獨馭神馬游象先
독어신마유상선

홀로 신마타고
선천세계 노닌다네.

回看向來○磎地
회간향래○계지

자갈밭처럼 거칠던
지난 마음 돌아보니

妖魔俗念俱茫然
요마속념구망연

마귀 같은 속된 생각
모두 사라지고

但覺心源浩自運
단각심원호자운

단지 마음 근원
활짝 트이나니

揮斥物外逍遙天
휘척물외소요천

만물 초월하여
하늘 밖 노닌다네.

吾聞
오문

내 듣기를

上界眞人好淸淨
상계진인호청정

상계의 진인은
청정함 좋아하여

噓吸沆瀣糞穢湔
허흡항해분예전

이슬 먹고 살아가며
대 소변도 안 보고

餐霞服玉可延齡
찬하복옥가연령

노을 마시고 옥을 먹어
오래도록 살아가고

洗髓伐毛童顔鮮
세수벌모동안선

골수 씻고 터럭 베어
평생 동안 얼굴이네.

我自世間有如此
아자세간유여차

나도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거늘

豈與枯槁爭長年
기여고고쟁장년

어찌 고목과
오래살길 다투리.

君不
군불

그대 보지 못했는가?

見盧仝飢弄三百片
견로동기롱삼백편

노동이 배고프면
삼백 편 희롱하는 걸

文字汗漫空五千
문자한만공오천

오천 글자 도덕경도
모두 부질없는 것을.

* 盧仝飢弄三百片(노동기롱삼백편) : 노동이 『다가(茶歌)』에서 ‘봉함을 뜯으매 완연히 간의의 얼굴을 본 듯한데, 먼저 월단차 삼백조각을 살펴보았네.’(開緘宛見諫議面 首閱月團三百片) 이라고 한 것을 빌어 사용.

출전 : 『허암유집』 권 1

[감상평]

정희량(鄭希良, 1469 ~ 1502)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庵). 김종직의 문인.
1492년(조선 성종 23)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성종이 죽은 뒤 태학생(太學生)·재지유생(在地儒生)과 더불어 올린 소가 문제되어 해주에 유배되었다.
1498년 선무랑·행예문관봉교로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무오사화 때는 사초 문제(史草問題)로 윤필상 등에 의해 신용개·김전 등과 함께 탄핵을 받았는데,
‘난언(亂言)을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장(杖) 100, 유(流) 3, 000리의 처벌을 받고
의주에 유배되었다가, 1500년 5월 김해로 이배되었다.
1501년 유배에서 풀려나 직첩을 돌려 받았으나 대간 및 홍문관직에는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 해 어머니가 죽자 고양에서 시묘(侍墓) 살이를 하다가, 산책을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정희량의 茶詩는 참 길지요.
삶이 참 힘드셨나 봅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 많으신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