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탐사] 한일 역사 전쟁 열쇠 찾기 <중> 엄수경 동화작가·기록사진가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2023년 12월 11일(월) 10:08

1915년에 만들어져 1989년까지 사용 영산강 가항 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 대한민국 내륙 하천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 물 높이를 재는 것과 등대 기능을 겸했다. 영산포 선창은 일제 강점기에는 곡창지대인 호남 지역 수탈 거점으로 이용됐다. 1960년대까지 각종 선박이 왕래하면서 많은 수산물이 유통됐다. © 2023년

고대 한일관계 열쇠 독널무덤과 장고형무덤


영산강 일대에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역사적 비밀이 있다. 고인돌, 토착 세력이 만들었을 독널무덤, 백제계 굴식돌방무덤, 가야계 무덤, 왜계 장고형무덤 등이다. 영산강 유역은 백제계, 가야계, 신라계, 중국계, 왜계 등 다국적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가 영산강 유역임을 말해준다. 나주 영산포에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내륙에 있는 물 높이를 재는 등대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등대지만 그 이전부터 동아시아 해상 교역로 중간 기착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교통 중심은 강이다. 영산강이 맹주로 떠오른 것은 철과 관련이 있다. 영산강 변에 자리한 나주 남평면은 통일신라 때 지명이 철야현, 백제 때 이름은 실어산현이다. 모두 철 생산지를 뜻한다. ‘실어’는 ‘철’이란 고어다. 고대사회에서 철은 국가 성장 밑거름이면서 국력의 척도였다. 나주 봉황면에 철천리 철야마을이 있다. 철과 관련한 영산강 유역 나주가 맹주국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해상교역 당시 물길이 고속도로, 항로였을 영산강 황토돛대에 올라 새로이 펼쳐질 역사 현장을 꿈꿔 본다. © 2023년

장고형무덤은 백제와 관련이 있다. 대형 독널은 마한으로 상징되는 유물이다. 나주 복암리 고분 전시관 안에서 만난 2미터가 넘은 독널은 당시 마한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지배층이 가진 권력.
고분이라는 것을 몰랐던 마을 사람들은 어린 시절 말무덤이라 불렀다고 한다. 말이 묻혀 무덤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답사 때 봤던 장성영천리고분을 말뫼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말조개, 말잠자리, 말벌, 말거머리, 말고개, 말동네 등, ‘말’이 들어간 이름을 만난다. ‘말’이란 ‘크다’라는 접두어다. 크다, 넓다, 많다는 의미다.

영산강 유역 마한 역사에서 백제는 6세기 초반까지 직접 지배 세력으로 모두 편제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마한은 문자 기록이 적은 관계로 가야와 비교하여 조명받지 못했다. 6세기 이전이나 이후 백제가 왜에 전해준 문물은 오늘날 한류 열풍 못지않은 백제 열풍을 휩쓸었다. 당시 왜에서는 ‘구라다나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 별 볼 일 없다는 의미다.


백제보다 먼저 왜에 영향을 미친 세력이 있다. 바로 영산강 유역 마한이다. 영산강 유역은 마한 마지막 근거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연명체를 구성한 왕이 있었을 것이다. 마한 소국 수장은 규모에 따라 신지에서 읍차까지 칭호가 있었고, 연명체 수장은 왕이라 불렀다고 하지 않은가. 독널무덤에서 발견된 금동관 주인은 연명체 왕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장고형무덤은 고대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 중 하나다. 영산강을 따라 3세기부터 7세기까지 400여 년 역사를 담고 있는 유물이 출토되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왕국, 영산강 세력 실체에 다가간다. 마한 답사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책을 통해서 막연하게 알았다. 답사에서 그 실체와 마주하면서 백제와 왜, 마한과 왜, 백제와 마한 관계를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암내동리쌍무덤. 영산강 하류 내동리에는 7기 고분이 있었지만, 이미 파괴됐다. 제7호분은 1960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제1호분과 제5호분은 1967년 경희대학교박물관팀이 각각 발굴 조사했다. 이는 한국학자에 의한 최초 독널무덤 발굴이다. © 2023년

고대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 중 하나인 장고형무덤은 영산강 유역에서 만나게 된다. 거대한 고분군은 애석하게도 일제 강점기에 도굴당했다. 일본은 무덤 양식을 통해 백제와 마한은 왜와 관계에서 장고형무덤을 전방후원분이라 명명하며 고대 일본 최고 지배층 전형적인 무덤 양식이라고 자부심을 느꼈다. 결국에 가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야마토 왜가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백제, 신라, 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설이다. 그 증거로 장고형무덤을 들었다.

하지만 장고형무덤은 영산강 일대를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는 무덤 양식이다. 영산강 유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480여 기에 달하는 고분이 산재할 뿐만 아니라 왕릉급도 즐비하다. 전라남도 영암 자라봉 고분, 함평 장고산 고분, 영광 월산리 고분, 광주 월계동과 명화동 고분 등이 영산강 유역 일대에서 연이어 발견됐다.

마한 답사 제1과 제3 코스 답사를 다녀와서, 엄수경(동화작가, 기록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