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언시] 平海東軒 - 辛蕆

옮긴인 / 노주 나웅인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2024년 05월 07일(화) 05:00
나웅인 / 삼성한의원 원장
平海東軒
평해동헌

평해 동헌에서 쓰다

- 신천(辛蕆, ? ~ 1339)


亂紅濃綠遍村村
난홍농록편촌촌

가는 마을마다
붉은 꽃 짙은 녹음

信馬平蕪雨後原
신마평무우후원

비 갠 넓은 들
말 가는 대로 달려본다

繞郭長川如故里
요곽장천여고리

성 두른 긴 내는
고향 마을 같은데

倚山脩竹問誰園
의산수죽문수원

산밑 대 숲은
뉘 집 동산인지

宦途幾見鞭先着
환도기견편선착

벼슬길 몇 번
뒤쳐지고 나니

客路多慙席未溫
객로다참석미온

자리 따스할 틈 없는
객지 생활 부끄럽네

幸得餘閑欹午枕
행득여한의오침

요행 한가한 틈 얻어
낮잠 자렸더니

隔林無數鷓鴣喧
격림무삭자고훤

건너 숲 자고새
수 없이 지저귀네


遍 : 두루 편
* 脩竹(수죽) : 가늘고 길쭉한 대.
* 先着鞭(선착편) : 유곤(劉琨)이 젊어서 지기(志氣)를 자부했는데 조적(祖逖)과 벗이 되었다.
조적(祖逖)이 등용(登用)되자 친구에게 주는 편지에 말하되,
“내가 창을 베고 새벽을 기다리며 늘 조생이 나보다 먼저 채찍을 칠까[先着鞭] 두려워했느니라.” 했다.
즉 어떤 일에 남보다 먼저 착수하거나 자리를 잡음

신천(辛蕆, ? ~ 1339)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덕재(德齋).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14년(충숙왕 1) 3월에 선부직랑(選部直郎)이 되었다.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1319년 6월에 총랑(摠郎)으로 있으면서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주청하여 스승을 문묘(文廟)에 종사하게 하였다.
1326년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달중(李達中) 등을 발탁하였다.
그 뒤 1339년 12월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죽었다. 시호는 문헌(文憲).
작품으로 안동(安東)의 영호루(暎湖樓), 청주(淸州)의 공북루(拱北樓), 통천(通川)의 총석정(叢石亭)을 읊은 시가 있다.
삼척팔경(三陟八景)의 하나인 「와수목교(臥水木橋)」,
평해(平海)의 경치를 읊은 「요곽장천여고리(繞郭長川如故里)」등의 시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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