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거리가 걱정거리로” ... 석유화학산업 추락 언제 멈추나 [긴급진단] 석유화학산업 해법 – 위기의 실상과 진단(2)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2024년 11월 22일(금) 14:27

글로벌 수요 부진, 가격경쟁력 저하로 위기가 가속화하는 여수석유화학산업단지 모습(2024. 11. 19)

올 3분기 수천억원대 적자 기업선 구조조정 회오리 바람
외부위협요인, 글로벌 수급보다 단가 문제가 더 큰 충격
중국도 버거운데 중동 산유국 직접 제품생산 ‘재앙 수준’


[프레스존=배진희 기자] 지난 2018년 이후 중국 발 공급과잉으로 악화하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올해 들어 불황의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국내 4대 석유화학사들은 지난해부터 수익성 저하 흐름을 보이며 적자 국면으로 들어섰으며 올해엔 그 적자 폭이 훨씬 커지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2021년 만 해도 영업이익이 9조712억원에 이르다 2022년 2조490억원대로 대폭 줄어들더니, 지난해엔 577억 원이라는 적자 국면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 흐름은 올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욱 심각한 문제다.

굴지의 화학업체들은 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내부적으론 긴축, 공장 가동 축소 외에도 협력업체에 고통분담을 종용하며 손익분기점을 맞추려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포트폴리오를 잘못 구성하는 바람에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는 일부 기업은 유동성 문제가 불거져 그룹 차원에서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해 이를 진화하는 비상경영에 내몰리고 말았다.

그룹에서 유통과 함께 석유화학으로 쌍벽을 이루며 우뚝 섰던 이 기업은 2022년 적자가 7천600억 원에서 2023년 절반 수준인 3천6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는 게 업체 관계자는 전했다.

올 2분기 4사의 영업이익 추이를 보면,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은 각각 4,059억원, 923억원의 이익을 냈다. 반면, 한화솔루션과 롯데케미칼은 각각 1,078억원, 48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 기업은 3분기 들어선 더 큰 적자에 빠졌다고 걱정한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 여수사업장에선 30% 급여 반납, 공장 매각 또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 석유화학 4사의 영업이익 추이

석유화학산업이 이렇게까지 악화한 데는 결국 기업들이 외부 요인을 예측하면서도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및 업계의 적확한 진단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수년 전부터 급변하는 대외환경에 대응했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사업 재편 노력이 없이 머뭇거린 결과라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으리만치 위기의 시급성, 구조조정의 절박함이라는 큰 부담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잘 알려진 대로, 지금의 석유화학산업은 범용제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외부환경의 변화에 취약한 구조라고 풀이된다. 기업들이 주력해온 에틸렌 수요의 회복이 올해 역시 부진하고 중국발 프로필렌 공급이 지속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국내 화학업체의 가동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석유화학 전문가들은 몇 년 후 중동 국가들이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려고 구축 중인 석유화학설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부담은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사우디, UAE, 오만 등 산유국의 정유사들이 그 위기를 가중시키는 경쟁업체가 될 것이기에 중국에 이들까지 엎친데 덮친 격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석유화학통합설비(COTC: Crude Oil To Chemical)로 화학제품을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8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이를 통해 에틸렌 생산능력을 연간 1,123만 톤까지 증설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의 기업들이 국내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3분의 1 가격으로 시장에 내다 팔게 되면 가격경쟁에서 버텨낼 수 없음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라고 판단한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는 요인들

정광하 한국석유화학산업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국내 석유화학산업 위기의 원인을 매우 복합적이라고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내수정체, 글로벌 수요부진, 글로벌 과잉투자, 중국자급률 상승, 원가경쟁력 약화, 오일 피크(oil peak), 글로벌 주요 환경규제 등이 화학업체를 압박하고 있는데 이 관점에서 종합대응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재 위기 국면의 석유화학산업을 살리려면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석유화학 구조조정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단지 석유화학 기업들만의 자본과 힘과 자구노력만으로는 정상궤도에 미치지 못할 터다. 지난 50여 년 동안 생산과 수출로 국가경제를 이끌어온 석유화학산업을 자랑거리에서 걱정거리로 전락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결국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산업통상자원부를 향해 더는 꾸물거리지 말고 서둘러 법률적,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해 당장 산업현장에 적용하라는 주문이 빗발친다. 정치권에서조차 정부가 별로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거두지 않고 있는데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좌고우면하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느냐는 우려감을 감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