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아낙의 마음
-김극검(金克儉.1439 ~ 1499)
未授三冬服
미수삼동복
겨울옷 아직
보내지 못해
空催半夜砧
공최반야침
한 밤 다듬이질
마음만 바빠
銀釭還似妾
은강환사첩
은 등잔도
마치 이내 마음같아
淚盡却燒心
누진각소심
눈물 다 지고 나니
마음마저 타는구나.
님께 보낼 옷 손질에 바쁜 여인.
잠 못 자고 다듬이질 하는데
은 등잔 등불도 여인네 마음 같아야
기름 다하니 심지마저 타는구나.
김극검(金克儉, 1439 ~ 1499)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렴(士廉), 호는 괴애(乖崖).
아버지는 김강의(金剛毅).
학식이 뛰어나 일찍이 생원시와 진사시에 잇달아 합격하고,
1459년(세조 5)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해 한림이 되었다.
특히, 시문에 능해 1464년 세조가 양성지(梁誠之) 등에게 명해 연소한 문신을 육문(六門)으로 나누어 배정할 때,
성현(成俔)·유순(柳洵) 등과 함께 시학문(詩學門)에 선발되었다.
이어 예문관대교에 올랐으며, 당시 발영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세조가 죽자 예문관부교리로서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했고, 장령·예문관응교를 역임하였다.
그 뒤『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하고, 그 뒤, 한성부우윤을 거쳐 호조참판에 올랐다.
다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성종이 죽자 『성종실록(成宗實錄)』편찬에 참여하였다.
문장에 능했고 성품은 청렴 강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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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배진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