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정신 기념 행렬 17일 오후 전국 각지에서 5·18국립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이 40년전 신군부 학살 만행을 떠올리며 민주주의 수호를 다짐하고 있다.

[프레스존]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광주여! 5월의 꽃이여! 민주주의여!” (경남 합천. 김기태, 정옥재)
“5월의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전북 전주. 하종호, 이남례, 하은서)
“민족민주열사님!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내겠습니다. 시민정신으로” (충북 천안. 전승예)

꼭 40년 전, 1980년 5월 무자비한 신군부 계엄 군인들의 총칼 앞에 광주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저항하며 목숨까지 내던졌던 그 날이 왔다.

18일부터 27일까지 항쟁 열흘 동안 고립무원의 도가니에 빠진 광주를 누구도 보호하지 않은 그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순간이다.

총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른 계엄군의 잔혹한 만행, 옛 도청 앞 분수대를 사이에 두고 시민과 계엄군의 대치 상황, 21일 첫 발포가 있던 순간, 전일빌딩 상공을 선회하던 헬기로부터 기총소사마저 쏟아지는 금남로는 차라리 지옥이었다.

핏빛으로 물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오롯이 민족·민주, 평화·자주·대동정신을 일깨웠던 5·18민주화운동이 이렇게 또다시 조국과 국민 앞에 섰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로 향하던 민주시민들의 발길은 어느덧 40주년을 맞은 오늘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17일 오전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0주년 5·18민중항쟁 추모제'에 참석해 헌화·분향을 하고 있다./광주광역시

17일 추모제가 열린 망월동 5·18국립묘지에는 신종바이러스 ‘코로나19’라는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참배객들로 붐볐다.
멀리 충청북도 천안, 경상남도 합천에서, 전라북도 전주에서 5월 그날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합류했다.
전두환, 노태우라는 신군부 핵심인물과 지금도 뿌리를 같이하며 틈만 나면 5·18 정신을 왜곡하며 비하하는 집단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 내리라 다짐하는 민주시민 행렬이 이어졌다.

17일 오후에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묘역을 찾아 나선 추모객들은 오월역사 해설사로부터 자세한 스토리를 들으며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 신군부의 책동을 떠올리는 듯했다.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까지 당당하며,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5월 항쟁의 참모습을 새기려는 진지함이 그들의 눈길, 손길에게서 물씬 배어났다.

해마다 그 고통을 되새기며 이처럼 40번이라는 추도식과 기념식을 치르며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희생자 배상과 예우, 청문회, 국정감사, 특별법 제정이라는 과정을 밟아왔건만 80년 5월 광주학살의 진실은 아직도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비폭력, 비무장 시민을 향한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 지, 여전히 가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행방불명자 소재 파악 역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희생자 암매장이 존재했다는 사실, 증언이 잇따라도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있는 당시 군부의 기록이 폐기된 까닭이다.

광주항쟁이 북한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까지 우겨대는 극우 집단의 왜곡, 보수정치집단이 틈만 나면 자행하는 광주정신의 비하를 바로잡는 것도 과제로 남아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 운동을 명시하는 국가적, 국민적 역사바로잡기 운동이 필요하다. 5·18을 폄훼하거나 호도하는 경우 법적 책임을 묻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60대 후반쯤 되 보이는 노신사가 고 윤상원 열사 묘 앞에서 오월역사를 해설하며 내 던진 말이 귓전을 때린다.

“앞으로 30년 후면 5·18을 경험한 이들이 다 죽고 만다. 머지않아 그날의 역사, 그 참혹한 진실을 증언해 줄 이가 아무도 없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40주를 맞아 “반드시 신군부의 발포명령자를 규명하는 일이 중요하며,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명기해 그 정신을 기려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에 기대를 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