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화 프레스존 발행인/법학박사

온난화·총허용어획량 규제로 어민 이중고
피해 입은 흑산 어민 위한 TAC 개선 시급


국내산 참홍어가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 계절이라면 요즘 같은 엄동설한이 아닌가 싶다. 클수록 좋다는 암컷, 한 보름 남짓 삭히고 나면 톡 쏘며 알싸하되 달콤하기까지 한 맛이 군침을 한껏 돋운다.

붉은 색을 띄어 이름 붙여진 홍어는 역사적으로도 등장한 귀한 어종이다. 조선왕조 초기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를 보면 임금에 올리던 진상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흑산홍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 유배인 김약행의 ‘유대흑기’(1770년)라고 전해진다. 그 뿐 아니다.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정약전(1758~1816)이 당시 서남해 어종을 기록한 자산어보에 등장한다. 여기에는 “전남 지역 홍어의 기호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훅산도 인근 도초면 우이도에서 홍어 장수로, 정약전과도 우의를 다진 문순득(1777~1847)의 ‘표해시말’에도 기록돼 있는 역사적 식재료로 손꼽힌다.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은 2021년 9월 국내에선 11번째로 국가중요어업유산에 올랐다. 보성 뻘배어업(2호), 신안 갯벌 천일염어업(4호), 완도 지주식 김양식어업(5호), 무안·신안 갯벌 낙지 맨손어업(6호), 광양 하동 재첩잡이 손틀어업(7호)의 뒤를 이어 전남에선 여섯 번째.

1770년 김약행이 처음으로 언급한 점을 미루어 짐작하면 흑산 홍어잡이 어업은 최소한 250년 이상 관행적으로 해온 전통어업기술이라 해도 무방하다.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싯바늘을 매달아 홍어를 잡는 어구(주낙)를 쓰는 게 특징이다. 미끼를 끼우지 않고 미늘(낚시 끝의 안쪽에 있는 작은 갈고리)이 없는 낚싯바늘(걸낙)을 사용한다.

홍어를 잡아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먼 나라, 국외 홍어 생산지로 분류된 미국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등지처럼 그물을 해저에서 끌어 고기를 잡는 트롤(Trwals) 조업과 크게 차이가 난다. 트롤 조업은 홍어 외에도 다른 어종까지 혼획이 이뤄지는 반면, 흑산도의 주낙 방식은 혼획이 없고 미끼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해양오염도 최소화하는 등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작다.

그런데, 요즘 전국 최대 홍어 주산지로 명성이 자자한 ‘흑산 홍어’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푸념들이 적지 않다. 몇 년 새 흑산 연안에서 잡히는 홍어 어획량이 전북 군산 어청도 해역에서 잡히는 ‘군산 홍어’ 어획량에 크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란다.

상황이 이렇게 역전된 것은 마구잡이 홍어 잡이를 규제하는 총 허용어획량(TAC: Total Allowable Catch) 제도가 원인이다. 이 규제가 2009년부터 흑산 연근해와 인천 해역, 두 곳에만 적용되고 있기에 오는 기현상이라고 흑산 어민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홍어는 서해안 일대를 남북으로 오르내리는 회유성 어종인 만큼 흑산도, 인천 뿐 아니라 전북, 충남, 경기까지 서해안 전역으로 총 허용어획량 제도를 확대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전북 군산 지역 홍어어획량은 2017년 4톤에 불과했는데 2018년 36톤, 2019년 224톤, 2020년 637톤으로 급증했다. 급기야 2021년엔 1천417톤으로 전국의 45%를 차지했으며 전남 1천4톤을 크게 앞질렀다. 2022년 올해 들어서도 지난 9월 기준 700톤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난해 군산 해역에서 잡은 홍어 어획량 1천417톤은 전남 흑산 해역의 지난해 TAC 583톤에 비해 두 배를 넘는다. 지난해 505톤을 획득한 신안의 어민들은 금어기가 풀린 올해 7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석달 겨우 65톤을 잡는데 그쳤다. 그동안 흑산 해역에선 2019년까진 홍어가 넘쳐나도 제한에 묶여 잡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엔 수온 상승으로 홍어, 오징어, 고등어 등 난류성 어종의 서식지가 북상하는 바람에 홍어를 예전처럼 잡을 수 없는 지경이라고 흑산어민들은 하소연한다.

이런 마당에 겨울철 홍어가 남하하는 길목인 군산 어청도 근해에선 총허용어획량이 제한없이 홍어를 마구 잡아들이도록 내버려둬서야 될까. 서둘러 이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수산자원 보존의 원래 취지가 퇴색함은 물론, 현실 따로 정책 따로 운영되는 ‘기울어진 운동장’ 격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다.

필자가 며칠 전 해양수산부 주무과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바, 총허용어획량 제도를 흑산도 근해와 인천해역에서 전 해역으로 넓히려면 절차가 필요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지역별로 어획량 조사도 하고, 어업인들로부터 의견을 들어야 하고, 합리적 방안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투다. 어떤 식으로든 내년 하반기쯤 시행하려면 상반기 중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렸다. 일부나마 신안 홍어잡이 어업인들 사이에 찬반 의견도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설령 그렇더라도 흑산 어민들이 참홍어 흉년에 총허용어획량 규제까지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불공평한 현실을 마냥 미뤄둬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