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선 칼럼] 미·중 갈등과 한국의 해양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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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선 칼럼] 미·중 갈등과 한국의 해양안보
칼럼니스트 /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 입력 : 2024. 09.20(금) 11:00
  • 배진희 기자
2006년 10월, 미국 항공모함 키티 호크(Kitty Hawk)호가 이끄는 초대형 항공모함 대대가 정례 군사작전 일환으로 일본 남부와 대만 사이 동중국해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 중국 해군 잠수함이 사전 예고없이 미해군 어뢰 방어망을 뚫고 항공모함 군단 사이에 불쑥 솟아올랐다. 미국은 강력히 항의했고 중국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런, 우리 앞바다라서 별 생각없이 그랬는데 그게 당신네 함대 한복판이라니 그런 우연의 일치가 있나요.” ‘지리의 힘’의 저자인 팀 마샬(T. Marshall)은 이 사건을 드넓은 땅을 평정하느라 혼돈의 4천년을 써버린 중국이 G2로 부상한 이후, 막강한 대양해군력을 구축해 해양강국으로 전환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이 해상국가로 나아가려면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인도양과 태평양 제해권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이 해역의 중국 핵심 해양안보전략은 A2/AD(Anti-Access/Area Denial) 전략이라 할 수 있다. A2전략은 괌 등 미국 전진기지나 항모강습단 공격에 대한 방어능력을 확보하여 미군의 인도양과 서태평양 해역 접근 저지와 작전 방해를 통해 원거리에 머물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AD전략은 대만해협이나 동·남중국해에서 분쟁이 발생할 때, 미국 동맹국과 우방국의 군사행동을 차단함으로써 일정 지역의 군사개입을 막는 것이다. 이 전략은 남중국해와 서태평양에서 미군의 접근을 막아 중국 영해로부터 원거리에서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인공섬 건설과 베트남, 필리핀 등 관련국가와 해양영유권 분쟁 등에서 보듯이 현재의 국제해양질서에 도전하고, 해군 군사력 증강에 막대한 군비를 투자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제1도련선(쿠릴열도, 일본, 류쿠열도, 타이완섬, 필리핀 말라카 해협을 이은 중국해군의 방어선)에 포함된 동중국해와 한국의 서해 등을 내해(內海)로 정의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해군함정을 지원함과 정보함 위주에서 전투함 위주로 변경·운용하고 있어 한국해군과 마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알루샨 열도, 하와이, 뉴질랜드를 이은 제3도련선까지 제해권을 장악하여 미국의 태평양 독점지배를 저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중국해군은 1962년 북·중 해상경계선인 동경 124도선을 근거로 암묵적으로 작전구역을 설정하고, 서해 잠정조치수역 내 해상구조물 설치, 기상 중간선 내측 해양과학조사, 우리 함정·조사선의 활동 방해 등 공세적 활동을 펼치며 한국의 해양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태평양전략(인태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이 전략의 요체는 대내전략으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비해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신형 항공모함 등 고가치 전력뿐만 아니라 무인전력 등 첨단기술 기반의 해양군사력을 확보함으로써 자체적인 해양전력를 강화하고 있다. 대외전략으로 미국은 해양안보의 국제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동맹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협의체로 한국이 참여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워크(IPEF), 안보협의체로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와 오커스(AUKUS; 미국, 영국, 호주) 등 소수 참여국의 다자 안보협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인태전략의 주요 실행계획으로 대중국 억제강화와 기존의 군사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인태전략에서 군사·외교뿐만 아니라 경제·산업·과학기술 등 전 분야에서 동맹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동맹국과 안보협력체제를 바탕으로 동·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을 포함한 해양영역에서 현행 국제법 기반 해양안보 질서를 구축하고자 한다. 앞으로 미국이 동맹 및 파트너와 해양안보협력을 추진하며, 미국 주도로 해양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해양작전과 훈련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미·중 간 해양을 둘러싼 군사, 정치, 외교,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이런 해양안보 상황을 국익에 부합하도록 해양안보 정의, 목표 및 대상,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해양안보전략과 실행계획을 수립하여 한국의 미래안보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배진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