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웅인 / 삼성한의원 원장

午窓
오창

한 낮 창가에서

- 허균(許筠, 1569 ~ 1618)

毗耶居士*今杜口
비야거사*금두구

유마거사 지금 아무 말 없이

只許*宴坐*焚妙香
지허*연좌*분묘향

조용히 앉아 참선하며 향만 태우는데

濃陰滿庭白日靜
농음만정백일정

진한 그늘 뜰에 깔려 한 낮 고요하고

黃鳥一聲幽夢長
황조일성유몽장

꾀꼬리 한 울음에 그윽한 잠 길어라

茶鐺經券是生活
다당경권시생활

차 솥과 경전은 살림살이요

黎杖蠟屐*惟行裝
여장납극*유행장

지팡이와 나막신은 나들이 차림일세

早晩君恩許歸去
조만군은허귀거

머지않아 임금께서 귀거 허락하면

放歌科頭湖水傍
방가과두호수방

맨상투로 호수 가에서 맘껏 노래하리라.



*비야(毗耶) : 비야리(毗耶離)의 준말로 석가모니 당시에 유마 거사(維摩居士)가 병을 핑계대고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설했던 성(城). 또는 유마거사가 설한 불이법(不二法)을 말한다. 『유마경(維摩經)』에 “伊時毗耶大城中有長者 名維摩詰”이라 하였다. 진병ㆍ가병은 유마힐의 병을 말한다. 여기서는 허균 자신을 일컫는다.
杜 : 팥배나무 두, 막다, 닫아걸다
* 只許 : 단지 허락함.
* 宴坐 : 조용히 앉아서 참선함.
* 蠟屐 : 나무가 말라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겉에 밀랍을 녹여 칠한 나막신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배진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