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화 프레스존 대표

대통령·총리도 약속, 지역 내 다툼으로 변질
동·서부 갈등에 행정력 동원, 정치권 부채질
의사들 격한 증원 반발 지속에 무산 걱정도
대학추천·병원 신설 용역 예정대로 진행해야

전남 국립의대 신설을 위한 후보 대학들과 이를 지원하는 세력 간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 대통령과 총리까지 나서 약속한 이 문제는 지역 내 다툼으로 변질해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목포대와 순천대 중 한 곳이 의대 설립 대학으로 결론이 날 전남도의 용역이 제대로 진행될 것인지조차 가늠키 어려울 지경이다.

전남의 묵은 숙제라 할, 의대 신설은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올 초만 해도 잘 풀려나가는 듯싶었다. 목포대든 순천대든 어디라도 의대가 신설되면 되기에, 두 대학의 상생·협력 방안만 찾으면 되리라 여겨지기도 했다. 이 단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 ‘윈-윈’하는 경우의 수를 약속하는 선언을 채택하거나 전남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지난해 이맘때인 6월 7일 전남도청에서 목포대 송하철 총장과 순천대 이병운 총장은 김영록 전남지사와 “전남에 국립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데 공동 협력하자”는 내용으로 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다.

물론 당시엔 보건복지부, 대한의사협회가 의료현안협의체를 가동하는 정상적 행정업무가 작동 중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시점처럼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사들이 파업까지 나서게 되는 시점이나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정부나 의사협회의 협상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임은 불문가지. 전남 지역으로선 의대 설립이라는 간절함의 한목소리가 필요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우선 의대 정원 확대가 결정된 다음, 전남에 공공의대든 어떤 형식이든 의대 신설을 받아내려는 속내가 작용했을 터다. 정부로부터 의대 신설이란 과실을 따낸 뒤에는 순천, 목포 지역이 갈려 자기들 지역 대학에 의대를 두려고 피 터지게 싸우려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전남 의대 신설이라는 약속을 받은 현 단계에선 어떤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서우리만큼 순천과 목포 지역이 제 목소리를 내며 극명하게 갈리는 게 섬뜩하다. 어디라 할 것 없이 민관이 앞장서서 행정력을 동원하고, 지역 정치권마저 갈등을 부채질하는 꼴이니, 이 상황은 곧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앞으로 의대 신설이라는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계산을, 나아가 해당 지역 분열상을 미리 내다본 게 정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는 판단이 든다. 당연히 이렇게 돼선 안 될 일이다.

앞서 지난 1월과 2월, 정부는 실제로 전남 의대 신설을 약속하고도, 그 지역과 대학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지역 선택의 몫으로 돌렸다. 가만히 그 과정을 곱씹어 보노라니, 지역 스스로 역량이 부족한 탓에 민주적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경우 정부의 결정이 앞으로 어찌 될지,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추천대학 선정의 권한을 부여한 전남도가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지역, 대학, 정치권까지 가세해 치고받는 식이라면 아주 큰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렇잖아도 서너 달째 의사들이나 의대 측 반발이 거센 마당에 전남에 의대를 신설할 대학을 추천하기 위한 용역조차도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경우라면 정부에선 아예 없었던 일로 슬그머니 물러설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의 눈을 잠시 밖으로 돌려 보면, 경북 지역에선 의대 신설을 약속받은 전남을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국립 안동대와 포스텍에 의대를 신설하려는 경북도로선 지난해 9월 4일, 전남-경북 국립의대 설립 대정부 공동건의문까지 전남도, 목포대, 순천대, 안동대가 공동 대처했는데도 전남처럼 정부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입장이라 그럴 만하다.

더욱이 목포대, 순천대는 이 과정에서 의대 정원 확대 시 의료 최대 취약지인 전남은 물론, 전남-경북에 공히 국립 의대를 신설해달라고 공동 건의를 하지 않았던가. 그래 놓고선 그 선언이 얼마 지나지도 않는 시점인데도 ‘언제 그랬느냐“는 투로 돌변하는 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향후 지역 공공의료 사령탑을 맡게 될 교육기관으로서도, 양심과 지성으로 순수학문을 지향하는 상아탑의 학자로서도 올곧은 처신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전국 광역단체 중에서 최악인 지역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 그 수단으로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공공의대 설립의 최종 관문을 돌파하려는 전남도의 현 단계 노력은 솔직히 가상하다는 판단이 든다.
전라남도 국립의대의 설립 당사자 격인 목포대, 순천대와 이후 설립 관련 용역을 거쳐야 하는 절차를 밟게 되는데 해당 지역 목소리를 담아내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순천대를 중심으로 한 동부권에선 소통과 대화를 거부한 채, 의대 신설 대학을 추천할 권한과 위임을 받은 전남도를 부정하거나 그 소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벽을 쌓은 건 비난을 자초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지역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전남 동부권-서부권 대립과 갈등이 이내 수그러들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아, 전남도는 이미 마련한 절차대로 진행하는 게 옳다. 지난 11일까지 ’전라남도 국립의대 및 대학병원 신설 정부 추천을 위한 용역‘ 입찰 공고를 마친 데 이어, 글로벌 컨설팅 업체와 국내 대형법무법인으로 이뤄진 컨소시엄을 ’국립의대 설립 용역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달 말 용역 계약이 이뤄진 후 설립방식선정위원회 구성, 사전심사위원회의 평가기준 마련 및 평가심사위원 선정, 평가심사위원회의 정부 추천대학 선정이라는 3단계로 진행하는 용역 절차를 통해 올 10월까지 결론을 낸다는 방침이다.

여기까지가 전남도의 몫이다. 그 이후의 과정은 정부의 권한 사항이다. 전남 의대를 어디로 정할 것이냐의 여부는 보건복지부 및 교육인적자원부의 테이블에서 가름하게 되므로 순천이든 목포든 지역에서 전혀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 된다. 단지, 전남도의 용역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지역민의 의료 욕구와 희망 사항, 해당 대학의이나 보건의료 전문가 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정부에 건의하거나 요구할 사항을 담아내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전남 국립의대가 공공의대로서 목포, 순천 두 지역에 둘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하지만, 둘 중 한 곳이라면 두 대학이 연합하고 협력하는 방안인들 봉쇄할 리 만무하기에 얼마든지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의대와 대학 병원을 결단코 내 지역에 두겠다며 두 지역이 밥그릇 차지하려고 싸우기만 하다 그 밥그릇 깨뜨리는 우를 혹시라도 범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